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폴란드-벨라루스 관계 (문단 편집) === 근세 === 근세 당시 폴란드 귀족 문화는 동유럽 각지에서 최첨단 문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정교회 문화의 본산인 동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정교회권은 계속 위축을 거듭하는 가운데, 폴란드 상류층들은 서쪽으로는 프랑스와 독일은 물론 이탈리아로부터 여러 선진 문물을 받아들였으며, 동쪽의 오스만 제국과도 활발하게 교류하였다. 전근대 당시에는 교육 기관들이 대개 종교 시설과 연계되어 관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톨릭 신자가 아니면 당대 최신 고등교육을 받기도 어려웠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교회를 고수하던 귀족들이 폴란드인들과 통혼하거나 폴란드어를 사용하며 폴란드인들과 급속히 동화되는 것이 당연했다.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폴란드 귀족 가문 상당수는 무슨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지주마냥 멀리서 굴러들어온 사람들이 아닌, 가톨릭으로 개종한 루테니아 가문 출신이었다. 폴란드 리투아니아 사이의 동군연합은 [[루블린 조약]]을 통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으로 통일되었고, 벨라루스 지역의 귀족들 역시 폴란드인 귀족들과 더 빠른 속도로 동화되기 시작했다. 루테니아 귀족들이 폴란드 귀족들과 같은 대접을 받은 것까지는 좋았으나, 루테니아 일대의 농노들의 처우 및 루테니아 [[정교회]] 신자들에 대한 입장이 시간이 지날수록 개악되었기 때문에[* 훗날의 [[프리비슬린스키 크라이|러시아령 폴란드]]와는 반대로 가톨릭 국가가 자국 치하의 정교회 신자들을 탄압한 케이스다.] 긍정 평가와 부정 평가가 교차한다. '''벨라루스 일대의 기득권층이 가톨릭화, 폴란드화하는 과정에서 벨라루스의 농노들은 정교회를 고수하였는데, 이는 지주와 농노 사이의 갈등이 단순한 계급 갈등을 넘어 종교/민족 갈등으로 번지게 됨을 의미했다.''' 벨라루스 민족주의자들이 폴란드 관련하여 느끼는 반감은 이러한 배경을 두고 이해해야 한다. 폴란드와 벨라루스 사이의 역사적 갈등은 폴란드가 벨라루스를 무력으로 침략해서 발생했다기보다는, 폴란드화한 벨라루스 기득권층과 벨라루스어를 보존한 피지배 계급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지배 하에서 벨라루스의 정교회 신도들이 반강제로 동방 가톨릭으로 개종되기도 했다. [[벨라루스 그리스 가톨릭]] 문서 참조. 벨라루스 현지 농노들은 그리스 가톨릭(비잔틴 전례를 유지하되 [[교황 수위권]]을 인정하는 형태의 교회)으로 개종된 이후에도 폴란드인 혹은 완전히 폴란드화한 현지 기득권층으로부터 차별을 받아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